이 내용은 음성을 자동으로 전사한 참고용 텍스트입니다. 일부 표현·고유명사·성경 장절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00:00:08] 1. 사랑의 증거
[00:00:30] 함께 읽고 또 함께 묵상하고 또 함께 쓰기까지 하면서
[00:00:33] 그렇게 예수님을 더욱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00:00:37] 바라기는 이 시간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00:00:40] 예수님을 조금 더 바로 알고 바로 믿어서
[00:00:43] 보다 온전하고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그렇게 성장하게 되기를
[00:00:47]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00:00:49] 오늘은 요한복음이 증거하고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포인트 메시지들이 있어요.
[00:00:55] 여태까지는 주로 성도의 온전한 믿음 여기에 포인트가 있었다면
[00:00:59] 오늘 말씀은 그와 더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00:01:03] 성도의 온전한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00:01:08]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 13장을 기점으로 해서요.
[00:01:12] 요한복음의 내용이 확 반전되거든요.
[00:01:15] 예수님께서요.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00:01:20] 이 13장부터 시작하시게 됩니다.
[00:01:22] 그리고 그 첫 번째 준비가 무엇이었느냐.
[00:01:25] 바로 자신의 제자들을 제자답게 세워가는 일이었습니다.
[00:01:30] 이제껏 함께 나누었던 12장까지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00:01:33] 주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라다니던 그 수많은 사람들, 모든 대중들, 무리들을 향한
[00:01:39] 설교와 기적의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습니다.
[00:01:43] 그런데 반면에 13장부터의 메시지는요.
[00:01:45] 그 받는 대상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딱 국한되기 시작합니다.
[00:01:51] 바야흐로 예수님의 본격적인 제자 훈련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00:01:55] 그리고 그 제자훈련의 시작점이 무엇이었느냐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로서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계명을 선포하는 일이셨습니다.
[00:02:07] 이제껏 제자들에게 있어서요. 계명이라고 하면 지난 1400년 시간 동안 모든 유대인들이 지켜 행해왔던 십계명을 의미했습니다. 십계명을 뜻했어요.
[00:02:16]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할 10가지의 계명을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그렇게 믿고 따라왔다는 겁니다.
[00:02:26]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야흐로 그 제자들 향해서 유대인들과는 구별된 크리스천들만의 새로운 계명을 드디어 천명하셨다는 거예요. 선포하셨다는 겁니다.
[00:02:38] 그리고 그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에 담겨 있어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계명이 무엇이냐? 서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사랑. 굉장히 단순하죠. 서로 사랑하라는 거예요.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00:02:58]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이 사랑이라고 하는 새로운 계명이 좀 뭔가 심심하지 않나요?
[00:03:05] 이걸 전문용어로 바꿔 얘기하면 슴슴하다고 하죠. 좀 그런 것 같아요.
[00:03:09] 어찌 보면 너무도 흔하디 흔하고 또 뻔하디 뻔한 그런 권면이고 교훈이 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00:03:15] 사실상 우리가 생각해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다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이야기하잖아요.
[00:03:22] 그런데 과연 이것을 우리가 기독교만의 새로운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00:03:27] 제가 결론부터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크리스천만의 분명한 정체성이고 사명이고 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00:03:41]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라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00:03:46]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알고 지나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가리켜서 새로운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00:03:57]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랑의 개념이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그 사랑의 개념과는 그 의미도 범위도 정도도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00:04:10]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표현은 동일한데요.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함의는 완전히 달랐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셨는가? 어떤 의미로 예수님은 그 흔하디흔한 사랑이라고 하는 단어에 ‘새로운’이라고 하는 파격적인 수식어를 붙이실 수 있었는가? 지금부터 그 의미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00:04:33] 먼저 예수님께서 사랑을 새로운 계명으로 규정하신 첫 번째 이유는요
[00:04:4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정도가
[00:04:43] 당시에 일반적인 사랑과는 완전히 다르고 새로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00:04:48]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정도를 생각해 보면요
[00:04:52] 보통은 내가 누구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00:04:55]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합니다
[00:04:58] 대부분 우리는 그렇습니다 이기적인 존재잖아요
[00:05:01]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 다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00:05:05] 언제든 우리는 나를 가장 귀하게 여기고요.
[00:05:08] 다른 사람은 늘 나 다음이라는 거예요.
[00:05:11] 이것이 일반적인 사랑의 정도입니다.
[00:05:13] 그런데요,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졌던 유대인들은
[00:05:17]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사랑에 도전하며 살았습니다.
[00:05:21] 그 사랑은 바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는 사랑의 정도였습니다.
[00:05:28] 지금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들도 나만큼 아껴주어라, 사랑해주어라 라고 하는 삶에 그들은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차원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조차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정도의 사랑을 도전하셨다는 거예요.
[00:05:45] 그 사랑이 무엇이냐? 다시 말씀이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어떻게 해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00:06:0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도전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00:06:05]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죠? 종교를 뛰어넘는 복음적인 사랑입니다
[00:06:11] 그것은 십자가의 사랑이고요 한없는 용서와 자비와 희생의 사랑입니다
[00:06:16]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그런 사랑이고요
[00:06:20] 심지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이 바로
[00:06:26]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또 베풀어주신 사랑이라는 거예요
[00:06:29] 사실 여러분 우리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를 아끼듯이 그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도 사실 우리에게 꽤나 벅찬 사랑입니다.
[00:06:40] 그런데 거기에 한술 더 뜨셨어요. 예수님께서요.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도전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00:06:50] 그 한없는 자비와 한없는 용서와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주어진 이웃들을 동일하게 사랑하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명령하신 사랑은 그런 사랑이에요. 종교마저 뛰어넘는 복음적인 의미에서의 더 깊고 넓은 사랑을 우리에게 도전하신다는 거예요.
[00:07:13] 그런데 여러분 놀랍게도요. 우리 생각이 어때요? 내가 예수님처럼 어떻게 사랑해? 내가 예수님이 아닌데. 이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인데요. 놀랍게도 예수님 당시, 그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요. 그 불가능할 것 같은 예수님의 새 계명을 정말 실천하면서 살아갔다는 겁니다.
[00:07:35] 그들은 정말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겼고요. 자신의 삶을 나누고 희생하면서 교우들과 이웃들의 삶을 돌보았다는 거예요. 세상 그 누구도 세상 그 어떤 종교도 이렇게까지 사랑하면서 살지 못했는데 유독 크리스천들만큼은 그 불가능한 사랑에 실제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거예요.
[00:07:55]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의 이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이 그 교회 밖에 있던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리스천들만의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삶의 방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00:08:08] 오늘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이 위대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크리스천을 크리스천답게 만들어주는 크리스천만의 고유한 시그니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00:08:20]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터틀리안이라고 하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마다 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00:08:29] 여러분 크리스천들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본 적이 있습니까?
[00:08:33] 크리스천들만큼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푸는 사람들을 여러분 본 적이 있습니까?
[00:08:39] 여러분 중요한 사실은요 당시 터틀리안의 이 말을 들었던 이 교회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터틀리안의 말에 공감했다는 사실이에요
[00:08:49] 아 맞아 그렇지. 크리스천들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그 사람들 우리는 본 적이 없지. 그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그 삶을 통해서 그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거예요.
[00:09:0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00:09:13] 바야흐로 그들이 새로운 계명으로서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인해서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그 고귀한 타이틀을 인정받고 칭송받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00:09:26]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계명으로서의 가지고 있는 첫 번째 함의입니다.
[00:09:30]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새로운 계명으로 규정되었던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의 범위가 완전히 새롭게 설정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00:09:40] 우리는 흔히 내 가족, 내 친구, 혹은 직장 동료, 교우들, 여기서 범위를 조금 넓히자면 같은 고향 사람, 혹은 학교 선후배, 내지는 같은 취향이나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 사람들.
[00:09:55] 여기서 가장 넓게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하자면 같은 나라, 같은 민족, 이 정도를 우리는 사랑의 대상으로 그렇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00:10:05] 이 이상 넘어가기는 사실상 힘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나와 그 사람과의 동질성이 필요하거든요. 동질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예수님께서요.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 사랑의 범위를 완전히 새롭게 설정하셨습니다.
[00:10:23] 마가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00:10:53] 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
[00:10:54] 내 가족이고 내 사랑의 대상이다
[00:10:57] 라고 새롭게 규정하셨다는 거예요.
[00:10:59] 그렇다면 여러분 이 성경
[00:11:01] 말씀이 의미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00:11:03] 행하는 자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00:11:05] 성경이 이렇게 진 거예요.
[00:11:0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00:11:09] 믿는 자마다 영생을
[00:11:11] 얻는 이것이니. 쉽게 말해서
[00:11:13] 뭐예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00:11:15] 무엇이냐? 그분의 아들이신
[00:11:16]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00:11:19] 이른 사람. 이게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00:11:21]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구원받은 주의 백성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을 일컫는 호칭이라는 겁니다.
[00:11:32] 그러니까 우리가 새롭게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이냐 나와 동일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거예요.
[00:11:42] 여러분 이제껏 우리의 사랑은요 언제나 나와의 그 세상적인 동질감을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00:11:47] 한 피를 나눈 가족 구성원 혹은 같은 학교 같은 직장 같은 교회 같은 동네 같은 나라 같은 피부색 같은 취향 우리는 무언가가 늘 같아야 사랑이 있다고 그렇게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죠. 나와 다른 사람은 정말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합니다.
[00:12:06]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서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나와 피를 나눈 한 가족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 친구나 동료나 교우나 주민이 동네 주민이 아니라 할지라도 심지어 나와 국적과 피부색이 다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와 함께 있다면 서로 사랑할 대상이라는 겁니다.
[00:12:32] 이것이 예수님께서 확장하신 새로운 사랑의 범위입니다. 맥스 루카도 목사님께서 쓰신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대규모의 전투가 일어납니다. 그 전투로 인해서 양쪽의 많은 군사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00:12:50] 이때 독일군 몇 명이 그 전사한 동료 군인을 안장하기 위해서 무덤을 묻기 위해서 프랑스 교회 묘지를 찾아가게 됩니다.
[00:13:01] 목사님께 이렇게 이야기해요. 목사님 이 친구가 굉장히 독실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00:13:07] 그런데 이번 전투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이 친구의 종교를 감안해서 교회 묘지 안에 묻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00:13:16] 그런데 목사님이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이 사람은 독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 묻힐 수가 없습니다. 거절했다는 거예요. 독일군들이 어쩔 수 없이 이 전우를 교회 울타리 바로 바깥에 그렇게 묻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00:13:35] 그리고 다음날 독일군이 다시 한번 교회 묘지 주변을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어제 우리가 교회 울타리 밖에 묻어두었는데 이 무덤이 교회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00:13:48]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 목사님을 찾아가 여쭤봤더니 목사님께서 밤새 교회 울타리를 옮겨서 무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끔 그렇게 조치했다는 거예요.
[00:13:58]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비록 이 땅에서는 우리가 나라와 또 다르고 민족도 다르지만 저 천국에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다 주님 안에 한 가족이 되어 살아갈 텐데 이 땅에서도 우리가 그런 사랑과 그런 자비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하셨다는 겁니다.
[00:14:16]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께서 새롭게 명령하신 사랑은요. 내가 사랑하고자 했던 대상의 범위를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으로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는 외모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다른 그 모든 사람들을 우리는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00:14:37]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잖아요. 주님과 국적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피도 섞이지 않은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요.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필요로 하신다는 겁니다.
[00:14:56]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가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성장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00:15:07]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새로운 계명으로 분류된 세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조건이 당시 일반적인 사랑의 조건과는 완전히 다르고 새로웠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00:15:20] 사람이요 보통 어떤 존재를 사랑할 것 같아요?
[00:15:24] 사랑할 만한 존재를 사랑합니다
[00:15:27] 여러분 우리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랑에는 늘 조건이 있어요
[00:15:31] 없는 것 같지만 있습니다
[00:15:33] 무언가 나에게 기쁨을 준다거나 나에게 필요가 있다거나
[00:15:37] 내 자녀라서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거나
[00:15:41] 혹은 적어도 내가 흠모할 만한 최소한의 지점들이 있어야 우리는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있어요
[00:15:48]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조건을 완전히 지우셨다는 거예요. 사랑할 만한 조건이 단 하나도 없는 대상들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00:15:57] 심지어 예수님께서 자신의 원수들에게조차 그 다함없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00:16:04] 이런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을 그분의 원수라고 떠올리거든요.
[00:16:13]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아무런 사랑의 자격 조건이 없는 원수 같은 존재는요.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에요.
[00:16:25] 우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일평생 죄악과 우상 숭배 속에 살아가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그분의 원수라는 거예요.
[00:16:34]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런 죄인 된 우리들마저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정체가 무엇이냐? 그분의 십자가 사랑으로 드러났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원수 된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임당하셨습니다.
[00:16:54]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분의 십자가 죽음이 과연 예수님 자신에게는 그 어떤 유익이 있었을까요? 그분은 십자가에서 오직 죽음의 고통과 수치만을 당하고 그렇게 돌아가셨을 뿐입니다.
[00:17:08] 십자가의 유익은 오롯이 우리들에게만 있다는 거예요
[00:17:14] 우리들의 몫이라는 겁니다
[00:17:15]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 많은 우리들을 향하신
[00:17:18] 그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야말로
[00:17:20]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겁니다
[00:17:2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00:17:28]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00:17:32] 내가 너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한 것처럼
[00:17:36] 너희도 서로 그 어떤 조건도 붙이지 말고 그저 순전하게 사랑하라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사랑하기 어려운 존재가 누군지 아세요? 의외로요.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존재.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기 힘듭니다. 그를 불쌍히 여길 수는 있지만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할 이유도 조건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00:17:56] 그러나 예수님께서요. 그런 자들조차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거예요.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조차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새로운 계명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00:18:10] 올 초에 제 마음을 너무 울컥하게 만들었던 짧은 기도문 하나가 있거든요. 아마 여러분들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올 초에 사순절을 지나면서 우리가 교회 단체 카톡방에서 나누었던 사순절 릴레이 기도 중에서 어느 집사님께서 이런 기도문을 올려주셨어요.
[00:18:30]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00:18:32] 저는 사실 이번에 처음으로 사순절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00:18:36] 부활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절제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00:18:41] 제 마음도 참 숙연해집니다
[00:18:43] 아직 기도는 많이 서툴고 금식도 생소하지만
[00:18:46]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평소에 제 욕심과 나쁜 습관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00:18:51]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00:18:54] 저의 작은 다짐을 기쁘게 받아주시길 원합니다
[00:18:57]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00:18:59] 여러분 어찌 보면 굉장히 미숙한 기도일 수도 있어요
[00:19:04] 이걸 제가 만약에 정말 신학자, 율법학자의 눈으로 이 기도문을 딱 바라보잖아요
[00:19:10] 그럼 여러분 이것은 사실은 기도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짧은 독백 정도의 기도에 불과합니다
[00:19:15] 여러모로 부족할 수 있어요
[00:19:17] 하지만 여러분 이 기도문을 제가 예수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니까요
[00:19:24] 이제껏 제가 목회를 해오던 가운데 그 가운데 많은 기도문을 봤겠어요
[00:19:28] 그 수많은 기도문들 가운데 단연 가장 진솔하고 아름다운 기도문으로 저에게 읽혀지는 거예요. 저는 이 기도문을 보면서 정말 보자마자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 기도문이 나한테도 이렇게 큰 감동인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는 얼마나 예쁘고 기특하게 보이는 기도문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00:19:47] 이처럼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서 명하신 새로운 계명 안에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00:20:01] 모자라다고 해서 질타하거나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서로의 연약함마저도 보듬고 헤아릴 수 있는 마음.
[00:20:10]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계명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00:20:15]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00:20:20] 이제 오늘 말씀의 두 번째 요점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00:20:24]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계명으로서의 사랑을
[00:20:29] 삶 속에서 실천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00:20:33] 사실 그 답은요 이미 오늘 본문 말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00:20:36] 오늘 본문 말씀을 한 번만 다시 읽어볼게요
[00:20:38]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00:20:40] 새 계명을
[00:20:49]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00:20:52] 예수님께서는 이미 스스로 사랑의 본보기가 되어서
[00:20:57]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이 정답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00:21:0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00:21:03] 즉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 그대로
[00:21:07] 이웃들을 향해 사랑을 베풀면 된다는 겁니다
[00:21:10]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00:21:15] 예수님께서는요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심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00:21:22] 예수님께서는 사실 그분의 열두 제자로부터 그 어떤 유익도 얻으실 수 없으셨어요.
[00:21:27] 그들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받을 것이 있으셨던 것도 아닙니다.
[00:21:33]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이유는 무엇이냐?
[00:21:36]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함이 아니고
[00:21:39] 다만 그들에게 선을 끼치시기 위해서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00:21:44]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00:21:47] 그저 서로에게 유익을 얻기 위해서 무언가 대가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00:21:52] 도리어 서로에게 선을 끼치기 위해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00:21:57] 저희 교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라고 하는 정통 감리교단에 속한 교회입니다.
[00:22:04] 저희 감리교회에는 특징이 하나 있어요. 매년 교회 경상비, 교회 우리가 사용하는 재정 예산의 5%씩을 교단 본부의 부담금으로 우리가 납부를 합니다. 그 재정으로 교단의 전반적인 행정이나 선교구제 등 많은 일들이 집행이 됩니다.
[00:22:22]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교단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는 게 하나도 없는데 왜 우리가 굳이 그 많은 부담금을 교단에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재정을 적게 보고해서 부담금을 우리는 줄여서 내고 있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00:22:39] 저도요 사실 한 교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담임자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에 많은 부분 수긍이 가요
[00:22:46] 현실적으로 우리가 부담감이 생기는 부담금만 우리가 납부하지 않아도요
[00:22:52] 우리 교회 몇 달치 월세가 보장이 돼요 너무 흔들리잖아요
[00:22:56] 그런데 언젠가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어느 선배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나요
[00:23: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가 정직하게 부담을 가지고 부담금을 납부하는 이유는
[00:23:09] 우리가 교단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을까를 생각하기보다
[00:23:12] 우리가 교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00:23:15] 이것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00:23:17] 제가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민이 많았거든요
[00:23:21] 내가 이 부담감이 부담감이 자꾸 부담감
[00:23:23] 부담금을 정직하게 내야 하나
[00:23:26] 우리도 조금 낮춰서 이렇게 내야 하나
[00:23:29] 이 고민을 제가 진짜 많이 했거든요
[00:23:30] 근데 그 목사님의 말씀이요
[00:23:32] 너무 선명한 등대가 돼서 불빛을 쫙 비춰주는 거예요
[00:23:36] 아 그래. 우리 교회가 교단이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줄 걸 기대하면서 이걸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이 감리교단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걸 생각하면서 정직하게 부담금을 납부해야겠구나. 이게 진짜 감리교회와 한국 교회를 사랑하고 살리는 길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00:24:04] 여러분 이러한 생각이요. 그냥 단순히 교회뿐만 아니라 저의 목양적인, 목회적인 측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더라고요. 우리가 지난 8월부터 교회 대심방을 신방예배에 이어가고 있잖아요. 대심방은 이제 목회자가 성도들을 개별적으로나 혹은 가정 단위로 직접 만나서 그 삶과 애환을 나누고 말씀과 교제복을 나누면서 함께 교제하고 또 기도하고 이렇게 목회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만남이고 사역입니다.
[00:24:33] 그런데 우리 교회는 상대적으로 여러분들 다 젊으시잖아요. 젊은 층이 많다 보니까 신방을 할 때도 목사인 제가 목회자인 제가 식사를 대접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이제 여러분들이 굳이 대접해 주신다면 제가 양보해 드려요.
[00:24:48] 뭐 굳이 아 근데 이거 내가 무조건 사는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제가 가급적이면 제가 사려고 노력을 합니다.
[00:24:55] 근데 만약에 제가 이거를요 이 마음을 의무감을 가지고 여러분을 신방한다고 하면 저에게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요?
[00:25:03] 야 이거 뭐 신방도 내가 해 예배도 내가 해 설교도 내가 해 밥도 내가 사 그러면 성도님 나한테 해주는 게 뭐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
[00:25:10] 아마 이 신방 자체가 저에게 너무 큰 시험거리로 다가올 겁니다.
[00:25:15] 내가 이제 다시는 내 신방 안 할 거야. 이렇게 다가올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 제가요 의무감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여러분을 신방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제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아세요? 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을 보다 사랑으로 섬길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을 더 사랑으로 아껴주고 대접할 수 있을까?
[00:25:40] 이때부터는요 신방하면서 베푸는 식사 대접이요
[00:25:44] 도리어 감사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00:25:46] 야 정말 내가 성도님들을 위해 베풀 수 있는 마음 주심에 너무 감사하다
[00:25:51] 베풀 수 있는 여건과 형편 주심에 사례비 주심에 너무 감사하다
[00:25:55] 베풀 수 있는 성도님들을 나에게 보내주신 것에 내가 너무 감사하다
[00:25:59]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요
[00:26:01] 대심방을 통해 여러분께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00:26:06] 이 대심방이 너무 기쁘고 감사한 거예요
[00:26:08] 그래서 매년 하는 거예요. 전 대심방이 매년 너무너무 행복해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함께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찐 행복을 누리는 또 하나의 순간이 있잖아요. 바로 예배를 마치고 찾아오는 애찬 시간. 너무 감동적이지 않아요?
[00:26:25] 저는요. 여러분들이 매주 준비해주시는 그 감동적인 애찬을 볼 때마다 진짜로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요. 이게 단순히 뭐 메뉴 거창한 메뉴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이거는 정말 와 이거는 성도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정성이다. 불가능한 수고다.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00:26:43] 여러분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왜 그렇게까지 막 집안에 있는 살림살이 다 끌고 와서 그렇게 대접을 하시는 거예요? 사랑 때문이죠. 사랑. 교우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유익이 아니라 모두에게 선을 베풀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애찬을 준비할 수 있는 거예요.
[00:27:06] 그런 사랑을 사심 없는 사랑을 우리는 사실 매주일 경험하고 있다는 걸 알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 그 사심 없는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시면 좋겠습니다.
[00:27:20] 대가를 바라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선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00:27:28]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들이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크리스천만의 새로운 계명이고 온전한 사랑인 줄 믿습니다.
[00:27:37] 또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오래 참으심으로 사랑하셨어요.
[00:27:41] 여러분 제가 정말 성경을 볼 때마다 놀라게 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00:27:44]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실망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주님께 늘 꾸중을 들었고요. 그들의 사랑 없음으로 인해서 질책을 받았습니다.
[00:28:00] 요한복음을 총 통틀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같은 진리를 총 20번을 설명하셨습니다.
[00:28:07] 같은 이야기를 20번을 하셨어요.
[00:28:10] 그런데 제자들이 그 20번이나 듣고도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는 거예요.
[00:28:15]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반한 채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00:28:20] 하지만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00:28:25] 그들을 참고 참고 또 참아주셨습니다.
[00:28:29] 믿음이 연약할 때는요 그 믿음이 자라날 때까지 기다려주셨어요
[00:28:33] 사랑이 모자랄 때는 그 사랑이 성장하기까지 참아주셨습니다
[00:28:38] 진리에 대한 지혜가 부족할 때는 꾸짖지 않으시고 그들이 알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해가며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온갖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00:28:49]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훗날 사도 바울이요 성도의 사랑은 이런 거야 라고 어떻게 기록하고 있느냐
[00:28:55] 기록하고 있느냐? 사랑은
[00:28:57] 오래 참고
[00:28:59] 모든 것을 참으며
[00:29:01]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00:29:03] 여러분 사랑이란
[00:29:05] 다른 게 아니에요.
[00:29:07] 오래 참는 거라는 겁니다.
[00:29:09] 지금 설교가 조금 길어지는 것 같아도
[00:29:11] 오래 참는 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00:29:15] 주님께서 우리를
[00:29:15] 그분의 한결같은 인내와 사랑으로
[00:29:17] 끝까지 참아주셨어요.
[00:29:18] 그런데 하물며 주님의 그 끈질긴 사랑을
[00:29:21] 받고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00:29:23] 누군가를 쉽게 포기하고
[00:29:24] 쉽게 사랑을 했어야 되겠습니까?
[00:29:27] 여러분 어떤 사람은요
[00:29:28] 진짜 끈질기게 나를 힘겹게 만듭니다
[00:29:31] 그와의 대화는 정말 감정적으로
[00:29:33]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고요
[00:29:35] 그와의 만남은 정말 심정적으로
[00:29:37]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00:29:39]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도전하세요
[00:29:41] 내가 오늘도 너의 죄악을 또 한 번 참고
[00:29:44] 또 참고 또 참고 용서하고 사랑한 것처럼
[00:29:47] 너도 너의 그 친구
[00:29:50] 너의 이웃의 실수와 잘못을 용납하면 좋겠다
[00:29:53] 주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도전하신다는 거예요.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예수님의 사랑은요. 오래 참는 사랑이에요. 오래 참음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서로를 오래 참아주는 사랑, 서로를 사랑으로 용납하며 살아가는 따뜻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00:30:17] 제가 오래 참아달라고 권면은 드렸으나
[00:30:20] 여기서 설교가 더 길어지면
[00:30:21] 오래 참는 게 아니라 교회를 오래 쉬실 것 같아서
[00:30:24] 눈치껏 마무리하겠습니다
[00:30:26] 세 번째 안 할게요
[00:30:27] 오늘 말씀의 마지막 요점입니다
[00:30:30]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새 계명을 지켜 행한 결과는 무엇인가
[00:30:34] 이것만 나누고 말씀을 마치려고 해요
[00:30:36] 말씀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00:30:37] 35절 말씀 읽겠습니다
[00:30:39] 시작
[00:30:40]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00:30:46] 아멘. 우리가 예수님처럼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
[00:30:55] 알게 된다는 것이 오늘 메시지의 결론입니다.
[00:30:59] 이 모든 사람 안에는요. 먼저 나 자신이 포함돼요.
[00:31:03] 여러분 우리 중에는요.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도 한 가지 의심을 합니다.
[00:31:10] 내가 진짜 예수님의 제자가 맞나?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00:31:14] 내가 스스로 제자됨에 확신이 없는 거예요. 이러한 의심의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는 삶이 무엇이냐? 서로를 사랑하는 삶이라는 거예요. 내가 나의 동료들, 교우들, 내 이웃들을 예수님처럼 그렇게 사랑하기 시작하잖아요.
[00:31:30] 그러면 비로소 그 사랑하는 삶을 스스로 살펴보면서 나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됨을 확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00:31:37]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잖아요.
[00:31:41] 그러면 교회 밖에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보면서 저 사람 예수님의 제자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00:31:50] 기독교 문헌에 따르면 초대교회 시절에 로마 제국의 제2의 도시, 우리로 치면 부산 같은 제2의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도시예요.
[00:31:59] 끔찍한 전염병이 발생했대요
[00:32:01] 그 병이 너무너무 치명적이었고 전염성이 너무 강해서요
[00:32:05] 일단 병에 걸렸다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었다고 합니다
[00:32:09] 그래서 그 사람을 반드시 성 밖으로 다 내쫓았다는 거예요
[00:32:12] 심지어 내 가족 내 친구라 할지라도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
[00:32:17] 그 즉시 집과 마을에서 내쫓았다는 겁니다
[00:32:20] 그러다 보니까 당시에 아무런 치료도 돌봄도 받지 못하고
[00:32:24] 성 밖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다는 거예요.
[00:32:29] 근데 유독 오직 크리스천들만큼은 누군가가 전염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00:32:34] 그를 피하거나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의 집에 방문했다는 거예요.
[00:32:40] 그를 돌보아주고 극진히 위로해 주었다는 겁니다.
[00:32:43] 그래서 크리스천들 중에는요.
[00:32:45]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홀로 방치돼서 죽어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겁니다.
[00:32:50] 그들은 정말 열성적으로 서로를 찾아다니면서 방문했고 위로했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00:32:55] 이제 전염병이 다 끝난 다음에 성 밖에 쌓인 그 수많은 시신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로마의 군병들이 나섰습니다.
[00:33:03] 그 수많은 시체들 속에서 무엇이 발견되었느냐 온갖 종류의 종교적인 상징물들이 다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00:33:12] 놀랍게도 유독 그 많은 상징물들 가운데 십자가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00:33:18] 그것을 본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이 이렇게 선포해요. 이제껏 내가 사랑을 말하는 수많은 종교들을 보았지만 크리스천들만큼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종교가 진짜 종교라고 하는 가장 완벽한 증거이다.
[00:33:39] 그 이후에 알렉산드리아 인구의 70% 이상이 크리스천으로 개종하고 회심하고 변화되는 너무나 놀랍고도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서 맞이하게 되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00:33:5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오직 사랑에서 나옵니다. 제자의 제자됨은 오직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으로 증명된다는 겁니다.
[00:34:03] 더욱이 우리가 교회 이름이 우리 교회 이름이 뭐예요?
[00:34:07] 모르고 나오신 거 아니죠?
[00:34:09] 우리 교회 이름이 사랑하는 교회잖아요
[00:34:11] 우리의 교회 됨 역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줄 믿습니다
[00:34:15] 바라기는 이 사랑이라고 하는 새로운 계명을 실천함으로
[00:34:20] 여러분의 제자 됨을 여러분 스스로에게도 확증하시고
[00:34:23] 또 여러분 주변의 이웃들과 그 밖의 모든 이웃들에게 증명하며 살아가는
[00:34:28] 우리 사랑하는 교회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